[제309호 3/25] 복층유리는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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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유리는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에 처음으로 특허를 받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상용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복층유리가 발명되기 전 단판유리는 바람은 차단했지만 더위와 추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1865년 미국의 Thomas D Stetson(1827-1916)은 이러한 단판유리의 단점을 보완하여 열 손실을 줄이고 소음 차단이 효과적인 복층유리를 발명하고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특허 상의 복층유리 제조 방법은 두 장의 유리 사이를 목재 스페이서로 띄우고, 퍼티를 사용하여 접착한 단순한 구조로 운송 전 경화까지 몇 주가 소요되었습니다. 해당 구조는 경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 후 1934년 10월 Charles D Haven은 현대식 복층유리 밀폐 장치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열전달은 줄이고, 결로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Thermopane이라는 이름으로 밀봉된 복층유리에 대한 특허를 받았습니다. Haven은 양 유리 사이에 팽창 및 수축이 반복되면서 밀봉제와 스페이서간의 결합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고 깨달았고, 팽창 및 수축으로 인한 복층유리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유리 간 공기의 수분을 제거하고 양 유리를 용접하여 밀봉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비싼 복층유리의 제작비용과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복층유리 시장의 성장이 부진했고, 1952년이 되어서야 Libbey Owens Ford 회사의 Thermopane 및 태양열 주택의 판촉으로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이중창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창틀과 함께 사용하기 위한 건축자재로서 U-PVC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복층유리가 건축의 최전선에 진출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Lois Welzenbacher’s Schultz house(1928)의 Yorke에 의해 기록된 것에 의하면 영국에서도 1934년에 복층유리 슬라이딩 문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1973년 오일(에너지) 위기 이전에는 오직 영국 주택의 10%만이 이중유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복층유리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플로트 유리의 개발 이후였습니다. 1952년 영국의 Alastair Pilkington경은 어느 날 저녁식사 후 부엌에서 식기를 닦는 부인을 도와주던 중 물위에 떠있는 접시를 보고 유리를 로(Furnace)에서 녹인 후 물에 띄워 판유리를 만드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용광로에서 나온 녹은 유리가 고온의 액체 상태의 주석 위(tin bath)에서 식으면서 고품질의 판유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렇게 7년간의 긴 연구 끝에 플로트 유리를 개발했습니다.
플로트 유리는 재료 자체의 무게로 두께가 일정하며, 표면을 매끄럽게 할 수 있어 연마가 필요하지 않고 연속적인 생산이 가능해 유리산업의 혁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와 동시에 복층유리 제작 시에 비용 절감이 가능해 졌습니다. 플로트 유리의 개발과 함께 오일(에너지) 위기 이후 에너지 최적화로 초점이 옮겨지면서 창과 벽사이의 단열 평균 값(U-value)의 제한(1.8 w /㎡K)을 도입하였고, 복층유리의 시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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